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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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김정은은 정말 종전선언을 원할까?

올해 북한은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발사처럼 미국이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일을 벌여 우리 정부를 들었다놨다 하며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정세의 '운전자'를 자임했지만 실질적 성과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어 온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6개월 남겨둔 시점에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9월22일(미국 현지 21일) UN연설을 통해 북한과 미국에 다시한번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이라고 말한 것은 종전선언 제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다.

그날 이후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고위 외교당국자들은 전방위로 미국 설득에 나섰다. 북한은 여러 건의 -때로는 서로 상충되어 보이기도 하는- 담화를 내놓고 미사일도 쏘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게 뭐길래] 종전선언, 무엇을 하자는 것?
끝날 종. 전쟁 전. '종전(終戰)'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정전협정) 서명으로 일단락됐다. 정전(停戰)협정에는 유엔군 총사령관 미 육군대장 마크 웨인 클라크, 북한군(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팽덕회) 세 사람이 서명했다.

1953. 7.27 판문점 휴전협정 조인식. 미 국방부 아카이브.
일반적으로 휴전협정은 이후 영속적인 효력을 갖는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이는 당사국 의회의 비준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그런 후속절차 없이 '전투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여 옴으로써 실질적으로 평화를 지속해 왔다. 일반인의 삶에 비유하자면, 공식적으로 금연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오늘만 피우지 말자'는 다짐을 유지하며 수십년 살아온 격이다.

이런 애매한 상태가 이제는 끝났음을 '선언'하자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올해 9월22일 UN연설)이다. 골자는 이렇다.
* 누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서
* 무엇을: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자.
*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명시하지 않음.(추후 협의하여 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 왜: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종전선언의 효과] 정전체제는 어떻게 되나?
1953년 7월27일 이후 대한민국은 정전 체제 위에서 존립해 왔다. 남북간 군사분계선도, 서해상의 NLL도 정전협정의 산물이다.

'정전'(전쟁이 멈춘 상태)이 '종전(전쟁이 끝났음)'으로 바뀌게 되면 이러한 체제는 어떻게 바뀌는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유엔군사령부는 존립 근거를 잃게 될 수 있다.

주한미군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한미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주한미군은 정전협정이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서 주둔하는 것이므로 종전선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났는데 왜 안 나가느냐" 는 나라 안팎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가 이런 우려를 가장 잘 대변한다. 전쟁의 근본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제안은 위험하고 마법에 취해 있는 듯한 사고방식이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공고히 할 것이고, 중국이 적극 개입해 북한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법적 구속력은] 정치적 선언일 뿐 취소하면 된다?
이런 우려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선언일 뿐이므로 상황이 나빠질 경우 취소하면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사이인 2018년 9월하순, 종전선언에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던 미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당시에도 한미 양국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북한도 이런 설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여정은 '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 건 누구한테는 간절할 지 몰라도 의미가 없고, 설사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어떻게 여기까지] 종전선언 제안, 이번이 처음 아니다
정전 상태를 항구적인 종전 상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논의는 적어도 1991년 남북최초의 기본합의서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내용적으로나 인적 네트워크 면으로 보나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고 있는데, 종전선언 구상도 예외가 아니다. 2007년 10월4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문에서,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은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현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 2007.10.4 남북정상회담 합의서 중에서

2007년 10월4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를 강하게 종용하던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고, 이듬해 2월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종전선언 구상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열린 유화국면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에 종전선언을 하자고 명시했다.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 2018. 4.27 판문점선언 3조3항
트럼프 당시 미국대통령도 처음에는 종전선언 구상에 흥미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종전선언에 참여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은 궁극적 목표로서 안정적 평화체제를 언급했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종전선언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왜 꼬였을까?] 북핵 해결 없는 종전선언 거부한 미국
2018년 봄에만 해도 낙관적으로 보였던 종전선언 문제는 그해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18년 7월25일 논평 기사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한 문제해결에 장애가 조성되고 있다"며 "남조선당국은 (...) 북의 비핵화 진척과 제재를 구실로 매우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조선 당국"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게 된 건 미국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북한은 미국에 미군 유해를 송환해 주면서 종전선언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북한이 '핵물질 신고목록'을 먼저 제출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핵 신고는 핵 사찰의 전단계다.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한미 양국 정상은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에서, 종전선언은 터널의 입구에 해당했다. 일단 상징적으로 '전쟁 끝 평화 시작'을 분위기 좋게 선언해 놓고, 협상이 힘든 문제는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는 셈법이었다. 그러나 미국내에서는 종전선언을 일단 해 놓고 나면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해야 하는 반면 북한이 추가적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제재를 가하기는 어려워지므로, 비록 구속력이 강하지 않은 선언이라 할지라도 '비핵화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섣불리 종전선언을 할 경우,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문제 없이 협상의 지형만 북한에 유리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립 상태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북한의 입장이 변하게 된다.
[북한의 요구 변화] 종전선언 → 제재 해제 → 적대시 정책 철회
2018년 후반기부터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는 요구, 그리고 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압박을 강화한다.

2019년 2월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김정은이 제재 해제를 얻어내기 위해 벼르고 벼른 승부수였다. 당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댓가로 안보리 제재 해제를 트럼프에게서 받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게 가능하다는 얘기를 북한의 외교 당국자, 그리고 중재역을 자임하던 한국정부 인사들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에 나타난 트럼프는 김정은의 예상을 벗어난 요구를 했다. 이미 낡고 알려질만큼 알려진 영변시설 외에 다른 핵시설까지 내놓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김정은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은 이후 미국과 한국에 대한 관계를 본격적으로 경색시키며 '나 화났다'는 티를 낸다.

2019년 봄의 김정은은 핵시설과 안보리 제재를 맞바꾼다는 안을 버렸고, 남한으로부터의 경제협력에도 더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그해 4월, 김정은은 자신들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강하게 내걸기 시작한다. 한국의 신형무기 도입이나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부쩍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이후부터는 한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통신선 정치'에 나선다.
끊었다 이었다 제멋대로…'통신망 정치'는 주한미군/ 연합훈련 압박 수단?
북한은 2020년 6월9일 남북 직통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일주일 뒤인 6월16일에는 2018년 판문점선언의 성과물이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 버린다.

그러더니 올해 7월27일(정전협정 기념일)에 느닷없이 통신선 복원을 통보해 왔다. 단절 13개월 만이었다. 그간의 일방적인 관계 악화 조치에 대한 유감표명 같은 건 없었다.

닷새만인 8월1일, 김여정은 담화를 내고, 그렇지않아도 축소된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던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8월5일,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4명이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전시작전권 회수 일정을 고려해서라도 이미 취소할 수 없는 훈련이었고,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그러자 연합훈련 첫날인 8월10일, 북한은 망 복원 14일만에 다시 통신망을 차단해버린다. 이런 행보는 우리 정부가 통신선 교신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날 김정은은 김여정에게 위임해 "(남한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담화를 냈다. 이 담화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담고 있다. 김여정이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다.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
- 김여정 8월10일 담화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 제안을 띄운 9월하순 UN 연설은 이런 맥락 위에서 나왔다.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 이례적인 '연거푸' 성명
북한은 문대통령 UN연설 이틀 뒤인 9월24일 이에 대한 반응을 내놓는다. 먼저,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이 "종전선언이 현 시점에서 조선반도 정세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으로 잘못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반도와 주변의 지상과 해상,공중과 수중에 전개되여있거나 기동하고 있는 미군 무력과 방대한 최신 전쟁자산들 그리고 해마다 벌어지는 각종 명목의 전쟁연습들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날이 갈수록 더욱 악랄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9월24일 담화 중에서
이런 담화가 김여정이나 김정은의 승인 없이 나왔을리는 없다. 그렇지만 불과 7시간 뒤에 같은 문제를 놓고 김여정이 직접 담화를 낸다. 이례적인 조치였다. '아랫사람을 시켰더니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담화에서 주로 주목을 받았던 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 그 자체로는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긍정 평가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주요 부분으로 가면 종전선언 무용론이 다시 반복된다.
"지금과 같이 우리 국가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과 편견, 적대시적인 정책과 적대적인 언동이 지속되고있는 속에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종전을 선언한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중략) 서로 애써 웃음이나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것이 누구에게는 간절할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가 없고, 설사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여정, 9월24일 담화 중에서

그러면서,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선결조건'을 내건다.

김여정은 25일 추가 담화에서는 상호 존중이 유지되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정상회담'을 논의할 수 있다고 우리 정부에 희망고문을 가하면서도, '이중기준 철회'와 관련해 다시한번 목소리를 높인다.
북한이 말하는 '이중 기준'이란?
북한이 우리 정부에 대해 '이중기준을 버리라'는 건 '너희들이 무기 도입하는 건 국방력 강화고, 우리가 무기 개발하는 건 도발이냐?'는 볼멘소리다. 문제는, 국제사회에는 이미 몇몇 나라들이 핵무장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더이상 핵무기가 확산되어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초반부터 이런 합의체계를 거부하고 핵탄두 제조와 핵탄두를 쏘아보낼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 건 그 때문이다.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합의의 틀 안으로 되돌아온다면 북한은 제재와 비난을 벗어날 수 있다. 재래식 전력을 이용한 도발 (연평도 포격 등)도 언제나 북한이 우리에게 먼저 가했지, 우리나 미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력 강화를 문제삼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게 '이중기준 철폐하라'는 요구의 속뜻이다.

올해 9월15일에는 이 문제와 관련한 공방이 남북간에 있었다.
이날 북한은 평안남도 양덕의 열차 발사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비행거리는 800㎞, 고도는 60여㎞로, 안보리 결의 위반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우리도 이날 신형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을 독자개발해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 군이 자체 개발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 충남 태안, 9월15일.
문 대통령은 이날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발사시험을 참관한 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사일 억지력을 언급했다.

사진은 SLBM 발사에 성공한 도산안창호 함의 함장과 통화하는 문재인 대통령.
북한은 문 대통령이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 했다 하여 발끈했다. 문 대통령 발언이 공개된 지 4시간만에 김여정이 담화를 내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상)대방을 헐뜯고 걸고 드는데 가세한다면 부득이 맞대응 성격의 행동이 뒤따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남관계는 여지없이 완전 파괴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9월28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한 당국의 대응을 지켜봤다. 우리 정부는 '도발'이라는 표현을 더이상 쓰지 않았다.
김정은 본인 등장…'중대과제' 제시
9월29일, 그동안 대남 메시지를 김여정에게 맡겨 두었던 김정은이 직접 대남 메시지를 내놓는다.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였다. 주요 내용은 10월 초부터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열겠다는 것, 그리고 '중대과제' 제시였다.

북한은 8월10일 단절 이후 55일만인 10월4일, 다시 우리측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통신연락선 재개의 의미를 깊이 새기라'면서 남측에 제기한 '중대과제'는 3가지로 요약된다.

이날 김정은은 이런 중대과제를 남한이 잘 실천해야 남북 관계를 수습하며 앞으로의 밝은 앞날을 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뭐길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란?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2018년 유화국면이 열리기 이전에는 북한을 당장이라도 폭격할 듯한 위협적 언사를 자주 썼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적대적'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 당국자들이 '우리는 북한에 무력을 행사할 의사가 없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김정은 위원장도 10월11일 국방발전전람회(자위-2021) 기념연설에서 "미국이 최근 들어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빈번히 발신하고 있지만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는 행동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노동신문 보도)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는 뭘 하라는 걸까? 이는 백두혈통 김 남매보다 좀 더 실무적인 얘기를 하는 외교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한 9.22 UN연설에 상응하는 북한의 연설은 김성 UN대사가 맡았다. 김성 대사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 걸음을 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도 9.24 담화에서 같은 말을 했다.
"조선반도와 주변의 지상과 해상,공중과 수중에 전개되여 있거나 기동하고 있는 미군 무력과 방대한 최신 전쟁자산들 그리고 해마다 벌어지는 각종 명목의 전쟁 연습들은 미국의 대 조선 적대시 정책이 날이 갈수록 더욱 악랄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주한미군, 그리고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는 일본이나 괌 등의 미군 전략자산 모두가 '대북 적대시 정책'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여러 담화나 연설에서 이런 입장이 거듭 표출된다는 것은 이것이 북한 수뇌부의 정리된 인식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김여정도 지난 8월 한미연합훈련 취소요구 당시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왓 김정은 원트]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의 핵전력 및 무력도발 위험에 대비하는 한미동맹은 남한내에 주둔하는 미군만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다. 심각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가까이는 일본, 괌이나 하와이, 멀리는 미국본토에서도 미군의 주요 전략무기와 추가병력 및 보급 물자가 날아오게 된다.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주장의 근저에는, 주한미군과 함께 이런 전략자산 투사능력까지 다 걷어내라는 요구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는 미국에 대해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내용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수 없는 전략적 상태'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가 되면 북한은 굳이 힘들여 무력남침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의지를 남쪽에 관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무기를 전략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남조선은 우리 무장력이 상대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김정은의 지난 10월11일 발언 (자위-2021 무기전시회)은 어느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쉽게 달성될 것이라고는 북한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전쟁이 정전상태에 들어간 1953년 7월 이후, 한 순간도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때로는 유화 제스처를 통해서, 때로는 무력도발을 통해서 혼란을 조장해 왔지만, 어떻게든 한미동맹을 갈라놓고 한반도를 온전히 제뜻대로 요리하고자 하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바람이다.

한반도를 차지함에 있어 누구와도 겸상하고 싶지 않은 것이 김정은의 본심일 것이다. (c) SBS 그래픽
전략적인 독상 차리기, 다시 말해 남들 간섭받지 않고 원하는 바를 채울 수 있는 상태 만들기. 이것에 무척이나 집착했던 20세기 정치인이 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어느날 갑자기 미치광이처럼 주변국을 침공했던 게 아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를 집어삼키기 전에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집요하게 외교전을 벌였다. '저거 어차피 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영향력 아래 있던 땅이야. 저기까지만 눈감아주면 우리도 굳이 너희와 피흘리지 않을거야. 너희도 1차대전에서 많이 깨져서 또 싸우기 힘들잖아?' 그 말에 결국 넘어간 영국과 프랑스는 중부유럽에 히틀러의 독상을 차려주는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파리를 점령하고 에펠탑을 둘러보는 히틀러. 1940년 6월.
북한이 종전선언에 긍정적으로 호응하고 나서는 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다는 전략적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설 때 뿐일 것이다. 또는 종전선언에 목말라하는 일방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거나 그 일방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설 때 뿐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는 신뢰를, 북한이 우리에게 준 적이 있었던가?

나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인지라, 나라간의 복잡한 일도 결국 사람간의 일을 닮게 마련이다. 개인간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아쉬운 쪽, 마음 급한 쪽, 매달리는 쪽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대선이 이제 넉달 반 남았다. 한반도 정세에 미지의 실험을 하기에 과연 좋은 시기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
이현식 기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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